장소 가이드

가기 전에 알아두세요

추천 시간
저녁
마지막 검토 · 2026년 7월 10일
요금
지역 입장료 없음, 쇼핑과 음식은 별도
공식 출처로 확인 · 2026년 7월 10일
소요 시간
1~2시간
마지막 검토 · 2026년 7월 10일
휴무
쇼핑 지역은 매일 운영, 상점별 영업시간은 달라요
공식 출처로 확인 · 2026년 7월 9일
혼잡
야시장 시간대가 가장 붐벼요
마지막 검토 · 2026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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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이야기

내국인에게 명동은 종종 낯선 이방인의 거리처럼 느껴집니다. 비싸고 복잡해 피하다가 코로나19 때는 텅 빈 유령 도시가 되어 발길을 끊었던 곳이죠. 지금은 거대한 뷰티 매장과 네온사인 아래, 전 세계의 언어가 섞여 흐릅니다. 화려한 치즈 랍스터 구이와 탕후루 리어카 사이를 걷다 보면 이곳이 그저 관광객을 위한 거대한 야외 쇼핑몰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발밑의 아스팔트를 한 꺼풀만 걷어내면,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이 지나온 모든 격변의 시간들이 겹겹이 묻혀 있습니다.

조선 시대 명동 일대의 이름은 ‘명례방’이었습니다. 북촌에 실세들이 모여 살 때, 남산 자락의 이곳은 권력에서 밀려난 남인 학자들의 흙먼지 날리는 조용한 동네였습니다. 이 쓸쓸한 변방에서 18세기 후반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비밀 집회를 열었습니다. 권력의 중심에서 빗겨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이 선택은, 훗날 이 언덕에 명동성당이 굳건히 뿌리내리는 결정적인 영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명동의 흙길이 단단하게 포장된 건 일제강점기였습니다. 인접한 충무로(혼마치)에 자리를 잡은 일본인들은 명례방을 ‘메이지초(명치정)’라 부르며 하수도를 파고 전기를 끌어왔습니다. 미쓰코시 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조지야(훗날 미도파)의 화려한 쇼윈도가 들어서자, 1930년대 명동은 수입 커피를 마시며 서양식 양복을 뽐내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해방과 함께 ‘밝은 동네(명동)’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한국전쟁은 이곳을 다시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명동이 가장 낭만적이었던 때는 이 폐허의 시기입니다. 갈 곳을 잃은 문인과 화가, 음악가들이 명동의 판잣집 다방과 막걸리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박인환 시인이 술집 냅킨에 시 ‘목마와 숙녀’를 휘갈겨 쓰던 1950년대의 명동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배회하는 서울의 몽마르트르였습니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