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시장 갈치조림 골목을 걷다 보면, 식당마다 입구에 산처럼 쌓아둔 노란 양은냄비들이 눈에 들어와요.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긁히고, 까맣게 그을린 자국들. 그런데 이 찌그러짐은 ‘레트로’ 장식이 아니라, 이 골목이 오래 써온 조리 시스템의 흔적입니다.
우리가 양은이라고 부르는 이 냄비는 얇게 찍어낸 알루미늄 합금이에요. 열이 오르는 속도가 빠르죠. 식당 밖 화구에 이 얇은 냄비를 올리고 강한 가스불을 켜면, 국물은 천천히 끓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들끓기 시작합니다.
이 골목이 커질 무렵 남대문은 밤낮이 없는 도매시장에 가까웠고, 손님들은 오래 기다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1화에서 계산대 아래로 밥을 밀어 넣고 몇 숟갈을 ‘마시듯’ 넘기던 그 속도와 비슷해요. 문제는 갈치조림이 원래 그런 속도에 맞는 음식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식당들은 분업을 만들어냈습니다. 한쪽의 큰 솥에서는 무가 빨간 국물에서 오래 끓고 있어요. 주문이 들어오면 주방은 작은 양은냄비를 집어 들고, 푹 익은 무를 먼저 깔고 갈치 토막을 얹은 뒤 육수를 부어 센 불에 올립니다.
바로 그때 냄비의 상처들이 역할을 합니다. 매끈한 표면보다 찌그러지고 긁힌 표면에는 국물이 들끓기 시작할 ‘걸림’이 많아요. 끓는 거품이 더 거칠게 일고, 국물은 더 빨리 소용돌이치면서 생선에서 나온 지방과 양념을 강제로 섞어버립니다. 그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맛이 무와 살 속으로 확 들어가죠.
무는 단열재이기도 합니다. 얇고 뜨거운 바닥에 갈치 살이 مباشرة 닿으면 금방 늘어붙고 부서지기 쉬운데, 무가 완충해 줘요. 게다가 국물을 잔뜩 머금은 무는, 바쁜 사람들에게는 생선만큼이나 중요한 한 조각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재료는 바뀌었습니다. 지금 이 골목에서 만나는 갈치는 대개 수입 냉동인 경우가 많아요. 가격도 올랐고, 풍경도 달라졌죠. 하지만 가게 앞에 쌓인 찌그러진 양은냄비들은 여전히 같은 걸 말합니다. 이 골목이 가장 빠른 불과 가장 얇은 냄비로, 가능한 한 빨리 한 끼를 완성해야 했다는 사실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