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상가 지하로 내려가다 보면, 요즘 서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갑자기 튀어나옵니다. 70대, 80대 단골들 사이에 스트릿 패션을 입은 20대들이 줄을 서 있는 풍경. 이른바 ‘위스키 런’이에요.
지하는 좁고, 형광등은 희게 번쩍이고, 공기에는 미국산 비타민 같은 약국 냄새와 진한 세제 향이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굳이 계단을 내려오죠. 어떤 날은 젊은 손님들이 시중보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혹은 잘 안 풀리는 병을 찾으려고 내려옵니다. 그리고 상인은 검은 비닐봉지에 병을 넣어주기 전에, 붙어 있는 세금 라벨이나 추적 표식을 슥 살펴보며 손을 빠르게 움직이기도 해요. 옆에서는 80대 할머니가 일본산 관절염 약을 챙겨 담고, 그 옆에서는 20대가 위스키 가격을 흥정하는 광경이 같은 프레임에 걸립니다.
이 생태계의 뿌리는 전후 서울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 공산품과 식료품이 흘러나오던 큰 줄기 중 하나가 미군 주둔지 주변이었고, 남대문 일대에는 자연스럽게 수입품과 암시장이 엉겨 붙었습니다. 단속이 돌면 물건을 순식간에 걷어 보따리로 만들고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전해지는데, 그래서 ‘도깨비시장’ 같은 이름도 붙었죠. 중요한 건 그 디테일이 아니라, 이곳이 처음부터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로 작동해 왔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 통로의 형태가 바뀌었습니다. 밤마다 전국으로 뚫리는 통로가 깔끔한 장부와 버스로 돌아가는 ‘합법 물류’라면, 이 지하의 통로는 더 느리고 더 개인적이고, 어딘가 회색빛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여기서 팔리는 핵심은 비타민이나 샴푸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 있는 마찰을 줄여주는 방식입니다.
오늘날 이곳 상인들은 대부분 60대에서 70대 여성분들이고, 주 고객은 70대와 80대, 오래 같은 동네에서 살아온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이 온라인 구매를 몰라서만 오는 건 아니에요. 단골이 계단을 내려오면 상인은 이미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놓고 작은 음료 하나를 건네요. 바코드 스캐너 같은 건 없습니다. 대신 그 집 사위가 좋아하는 술 취향, 손녀딸 피부에 맞는 비누, 할머니가 삼키기 편해하는 약 알 크기 같은 게 상인의 머릿속에 들어있죠.
상품도 이상할 만큼 구체적입니다. 그냥 비타민이 아니라 특정 라인만 고집하고, 같은 위장약이라도 꼭 그 제형만 들여놔요. 낡은 수첩에 금액을 적고, 기분 좋게 몇천 원을 에누리해 주는 이 대화와 존중의 시간. 빠른 배송이 대신하기 어려운 건 결국 이 감각입니다.
그래서 이 지하는 지금도 살아남습니다. 세상이 너무 매끈해져서 어디서든 버튼 하나로 통로가 열리는 시대인데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계단을 내려와야만 열리는 통로를 찾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