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의 열기에서 빠져나와 계단을 올라가면, 위층 공기는 결이 달라져요. 어떤 통로는 향이 은은하고 음악이 커서, 잠깐은 시장이 아니라 작은 가게들 사이를 걷는 느낌이 들죠. 그런데 이 깔끔한 조명과 행거의 풍경은 대개 ‘새벽 4시’ 이전의 노동을 지운 결과입니다.
여기서 그 노동을 여는 키워드는 ‘짝’이에요. 상인들이 부르는 짝은, 쉽게 말해 100킬로그램짜리 옷무덤입니다. 로스앤젤레스나 휴스턴, 혹은 일본의 분류 공장에서 유압 프레스로 눌러 만든 직육면체 덩어리죠. 방수포로 감싼 뒤 굵은 끈이나 철사로 묶여 있고, 단단하고 무거워서 잘못 떨어뜨리면 다칠 정도예요.
이곳 상인들 중엔 이삼십 대 청년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주식 대신 바다를 건너온 옷 덩어리에 돈을 거는 사람들 같아요. 컨테이너를 타고 인천항으로 들어온 짝 겉면에는 매직으로 ‘미국 믹스’, ‘일본 남성 재킷’, ‘미국 워크웨어’ 같은 말이 툭 적혀 있죠. 싼 건 30만 원대부터, 겨울 아우터 짝은 수백만 원까지도 갑니다.
문제는, 이게 거의 블라인드라는 거예요. 겉면의 글씨와 감만 믿고 결제하면, 작은 트럭이 그 덩어리를 싣고 와 비좁은 계단 위로 끌어올립니다.
짝을 뜯는 순간은 확실히 ‘사건’이에요. 끝이 휜 커터칼로 팽팽한 끈을 끊으면, 줄이 툭 끊어지는 게 아니라 탕—하고 터집니다. 몇 달 동안 압축돼 있던 옷들이 한꺼번에 숨을 토해내는 소리 같죠. 끈이 풀리자마자 큐브는 공기를 빨아들이며 훅 부풀어 오릅니다.
그리고 냄새가 와요. 오래된 섬유 먼지, 방충제 같은 약품 냄새, 묵은 땀 냄새가 한 번에 섞여 나옵니다. 상인들이 두꺼운 마스크를 쓰는 건 유난이 아니에요. 압축돼 있던 먼지와 섬유 찌꺼기가 그대로 작업자의 폐로 들어가니까요.
짝이 열리면 ‘광부질’이 시작됩니다. 무릎을 꿇고 옷무덤을 파헤치면서, 상인들 표현으로는 ‘고기’를 찾는 거죠.
여기엔 잔혹한 수학이 있어요. 수백 벌 중 상당수는 얼룩지고 늘어난 옷, 행사 티셔츠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건 큰 비닐봉지에 담겨 킬로그램 단위로 흘러가요. 동묘시장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다시 다른 나라로 수출되기도 합니다. 2층의 ‘부티크’는 사실 이런 하류의 흐름 위에 떠 있어요.
그다음엔 무난하게 팔릴 B급이 나옵니다. 플란넬 셔츠나 후드티, 평범한 청바지 같은 것들. 보통 2만 원, 3만 원 선에서 돌아가며 짝 값의 본전을 떠받칩니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남은 몇 벌이에요. A급, 보물. 상인들은 먼지 속에서 손끝 감각으로 캔버스 재킷의 질감이나 자수의 촉감을 먼저 찾아냅니다. 청바지 밑단을 뒤집어 셀비지 라인을 확인하고, 밴드 티셔츠의 스티치를 보면서 ‘이건 된다’는 순간을 잡아내죠.
그 중독성이 큰 건, 한 번쯤 대박이 터지기 때문입니다. 싸게 산 짝에서 뜻밖의 빈티지 한두 벌이 나오고, 그걸로 가게 한 달 숨통이 트였다는 얘기는 여기저기서 들려요. 반대로 프리미엄 짝을 갈랐는데 상태가 처참해 통째로 손해를 보는 날도 있고요. 무게를 속이려 뭔가가 섞여 있었다는 말까지 도는 판이니, 실패하면 월세가 그대로 날아갑니다.
운 좋게 고기를 건지면, 그때부터는 ‘가격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돼요. 구겨지고 냄새 밴 옷을 그대로 걸어둘 순 없으니까요. 스팀으로 주름을 펴고, 세탁과 탈취를 거치고, 수선집에 맡겨 실루엣을 바꾸기도 합니다. 같은 재킷이라도 ‘복원된 상태’가 되면, 이제는 다른 물건이 되거든요.
오전 11시, 형광등이 켜지고 향이 피워집니다. 몇 시간 전까지는 압축된 먼지 속에 있던 재킷이, 다림질된 채 행거에 가지런히 걸려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 올라옵니다. 아래층에서 밥을 먹고, ‘구경’하러 올라온 스무 살 대학생 같은 손님이요. 손님이 칼하트 재킷의 질감을 만지작거리면, 상인은 스툴에 앉은 채 말합니다. “그거, 구하기 힘든 거예요.”
그 말은 반쯤은 사실이고, 반쯤은 언어예요. 진짜로 희귀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재킷이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도박과 먼지와 복원이 전부 가격표 안에 접혀 들어가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