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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자골목 영업 중

가기 전에 알아두세요

추천 시간
10~11시 또는 15~17시 추천
마지막 검토 · 2026년 7월 10일
요금
시장 입장료 없음, 음식과 구매는 별도
공식 출처로 확인 · 2026년 7월 10일 출처 ↗
소요 시간
1~2시간
마지막 검토 · 2026년 7월 10일
휴무
일반 시장 일요일 휴무, 먹자골목은 연중 운영
공식 출처로 확인 · 2026년 7월 9일 출처 ↗
혼잡
점심과 저녁 피크에는 매우 붐벼요
마지막 검토 · 2026년 7월 10일
운영 시간
일반 시장 09:00~18:00, 먹자골목 09:00~23:00
공식 출처로 확인 · 2026년 7월 12일 출처 ↗

운영 시간, 요금, 휴무는 바뀔 수 있어요. 출발 전에 해당 출처에서 다시 확인해 주세요.

장소 이야기 · 챕터 5개 · 공개 오디오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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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기서 시작

    기름 냄새와 소음이 끓어오르는 100년의 장터

    1905년 상인들이 자본을 모아 세운 광장시장은 수십 년 된 빈대떡 굽는 소리와 좁은 계단 위 구제 옷시장의 열기가 한데 뒤섞이는 입체적인 공간입니다.

    오디오 준비 중 · 대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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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은 골목을 꽉 채운 기름 냄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 종로 한복판에 자리한 광장시장입니다.

    이곳은 1905년, 일본 상인들에게 상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우리 상인들이 힘을 모아 세운 시장으로 자주 이야기돼요. 예전엔 직물과 옷감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의 광장시장은 하루 종일 끓고 굽고 튀기는 소리로 살아 움직이죠. 좁은 나무 의자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낯선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며, 뜨거운 김과 소음을 같이 나눕니다.

    그런데 이 시장은 ‘먹는 곳’으로만 보면 반쪽이에요. 좁은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똑같이 빽빽하고 시끄러운데도 전혀 다른 규칙으로 돌아가는 층이 나타나거든요. 아래층의 기름과 수증기, 위층의 먼지와 천 냄새가 한 건물 안에서 섞이는 이 느낌—광장시장은 그런 식으로 입체적으로 서 있어요.

  2. 일본 자본에 맞서 싸운 최초의 주식회사 시장

    광장시장은 단순한 옛날 장터가 아니라, 1905년 일본 상인들의 상권 장악을 막기 위해 조선의 상류층이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세운 거대한 방어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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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년의 종이 한 장이 아직 남아 있어요. 우아한 붓글씨로 적힌 주권—광장주식회사의 주식 증서입니다. 많은 사람이 광장시장을 오래된 장터로만 떠올리지만, 이곳은 시작부터 ‘회사’였어요. 상설시장 운영을 주식회사로 꾸린, 아주 이른 근대적 실험 가운데 하나였죠.

    왜 그런 걸 만들었느냐. 그해 서울의 상권이 급속히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상인들이 서울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상업 네트워크를 넓혀가던 때였고, 금융 제도와 화폐 정리가 밀어붙여지면서 상인들의 유동성이 급격히 말라갔어요. 대를 이어 장사하던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휘청거렸고, 자본은 헐값에 핵심 상권을 가져가기 시작했죠.

    이걸 지켜보던 조선의 상류층이 있었습니다. 고위 관료 김종한, 그리고 훗날 두산의 뿌리가 되는 박승직 같은 인물들이요. 이들은 상소문이나 시위 같은 방식으로는, 당대의 ‘금융 전쟁’을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일본이 주식회사와 독점 자본이라는 무기를 쓴다면, 우리도 똑같은 무기로 방어벽을 세워야 한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1905년 7월, 자본을 모아 광장주식회사를 세우고 곧장 땅을 사들입니다. 일본 상인들이 그 안에 들어와 공간을 사거나 임대하기 어려운, 조선인 중심의 상업 구역을 만들려는 목적이었죠. 말하자면 ‘시장’의 형태를 한 거대한 자본의 바리케이드였습니다.

    ‘광장’이라는 이름에도 흔적이 남아 있어요. 원래는 청계천의 광교와 장교 사이에 시장을 지으려 했고, 그래서 앞글자를 따 광장이라 불렀죠. 하지만 지반이 약하고 장마철 범람까지 겹치면서 계획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법인 등록이 된 이름을 바꾸긴 쉽지 않았고, 그래서 발음은 그대로 두고 한자를 바꿔 ‘넓게 모아 간직한다’는 뜻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처음 광장시장이 강했던 품목도, 이런 방어의 논리에서 나왔어요. 일본이 쉽게 통제하거나 복제하기 어려운 것들—농수산물, 그리고 무엇보다 한복을 짓는 명주나 베, 무명 같은 전통 옷감의 공급망을 붙잡았죠. 조선의 돈이 조선인들 사이에서 돌게 만드는 생태계를 만들려 했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걷는 광장시장은, 그 초기의 설계도대로만 남아 있지 않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서울은 파괴됐고, 시장을 관리하던 구조도 함께 무너졌어요. 휴전 이후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빈자리를 메웠고, 사적인 요새였던 공간은 거칠게 점유되며 성격이 바뀌어 갔습니다. 그 변화 속에서 이곳은 ‘무엇을 파느냐’보다 ‘어떻게 버티느냐’가 더 중요해졌어요. 속도, 공정, 보이지 않는 연결망—겉으로는 어수선해 보여도, 시장은 그런 시스템으로 다시 굴러가기 시작한 겁니다.

  3. 먼지 덮인 100킬로그램 옷무덤에서 캐내는 보물

    2층 구제 상가에서는 해외에서 압축되어 온 거대한 옷 덩어리인 '짝'을 해체하고, 먼지 속에서 빈티지 의류를 건져내 가치를 복원하는 도박이 매일 벌어집니다.

    오디오 준비 중 · 대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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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층의 열기에서 빠져나와 계단을 올라가면, 위층 공기는 결이 달라져요. 어떤 통로는 향이 은은하고 음악이 커서, 잠깐은 시장이 아니라 작은 가게들 사이를 걷는 느낌이 들죠. 그런데 이 깔끔한 조명과 행거의 풍경은 대개 ‘새벽 4시’ 이전의 노동을 지운 결과입니다.

    여기서 그 노동을 여는 키워드는 ‘짝’이에요. 상인들이 부르는 짝은, 쉽게 말해 100킬로그램짜리 옷무덤입니다. 로스앤젤레스나 휴스턴, 혹은 일본의 분류 공장에서 유압 프레스로 눌러 만든 직육면체 덩어리죠. 방수포로 감싼 뒤 굵은 끈이나 철사로 묶여 있고, 단단하고 무거워서 잘못 떨어뜨리면 다칠 정도예요.

    이곳 상인들 중엔 이삼십 대 청년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주식 대신 바다를 건너온 옷 덩어리에 돈을 거는 사람들 같아요. 컨테이너를 타고 인천항으로 들어온 짝 겉면에는 매직으로 ‘미국 믹스’, ‘일본 남성 재킷’, ‘미국 워크웨어’ 같은 말이 툭 적혀 있죠. 싼 건 30만 원대부터, 겨울 아우터 짝은 수백만 원까지도 갑니다.

    문제는, 이게 거의 블라인드라는 거예요. 겉면의 글씨와 감만 믿고 결제하면, 작은 트럭이 그 덩어리를 싣고 와 비좁은 계단 위로 끌어올립니다.

    짝을 뜯는 순간은 확실히 ‘사건’이에요. 끝이 휜 커터칼로 팽팽한 끈을 끊으면, 줄이 툭 끊어지는 게 아니라 탕—하고 터집니다. 몇 달 동안 압축돼 있던 옷들이 한꺼번에 숨을 토해내는 소리 같죠. 끈이 풀리자마자 큐브는 공기를 빨아들이며 훅 부풀어 오릅니다.

    그리고 냄새가 와요. 오래된 섬유 먼지, 방충제 같은 약품 냄새, 묵은 땀 냄새가 한 번에 섞여 나옵니다. 상인들이 두꺼운 마스크를 쓰는 건 유난이 아니에요. 압축돼 있던 먼지와 섬유 찌꺼기가 그대로 작업자의 폐로 들어가니까요.

    짝이 열리면 ‘광부질’이 시작됩니다. 무릎을 꿇고 옷무덤을 파헤치면서, 상인들 표현으로는 ‘고기’를 찾는 거죠.

    여기엔 잔혹한 수학이 있어요. 수백 벌 중 상당수는 얼룩지고 늘어난 옷, 행사 티셔츠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건 큰 비닐봉지에 담겨 킬로그램 단위로 흘러가요. 동묘시장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다시 다른 나라로 수출되기도 합니다. 2층의 ‘부티크’는 사실 이런 하류의 흐름 위에 떠 있어요.

    그다음엔 무난하게 팔릴 B급이 나옵니다. 플란넬 셔츠나 후드티, 평범한 청바지 같은 것들. 보통 2만 원, 3만 원 선에서 돌아가며 짝 값의 본전을 떠받칩니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남은 몇 벌이에요. A급, 보물. 상인들은 먼지 속에서 손끝 감각으로 캔버스 재킷의 질감이나 자수의 촉감을 먼저 찾아냅니다. 청바지 밑단을 뒤집어 셀비지 라인을 확인하고, 밴드 티셔츠의 스티치를 보면서 ‘이건 된다’는 순간을 잡아내죠.

    그 중독성이 큰 건, 한 번쯤 대박이 터지기 때문입니다. 싸게 산 짝에서 뜻밖의 빈티지 한두 벌이 나오고, 그걸로 가게 한 달 숨통이 트였다는 얘기는 여기저기서 들려요. 반대로 프리미엄 짝을 갈랐는데 상태가 처참해 통째로 손해를 보는 날도 있고요. 무게를 속이려 뭔가가 섞여 있었다는 말까지 도는 판이니, 실패하면 월세가 그대로 날아갑니다.

    운 좋게 고기를 건지면, 그때부터는 ‘가격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돼요. 구겨지고 냄새 밴 옷을 그대로 걸어둘 순 없으니까요. 스팀으로 주름을 펴고, 세탁과 탈취를 거치고, 수선집에 맡겨 실루엣을 바꾸기도 합니다. 같은 재킷이라도 ‘복원된 상태’가 되면, 이제는 다른 물건이 되거든요.

    오전 11시, 형광등이 켜지고 향이 피워집니다. 몇 시간 전까지는 압축된 먼지 속에 있던 재킷이, 다림질된 채 행거에 가지런히 걸려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 올라옵니다. 아래층에서 밥을 먹고, ‘구경’하러 올라온 스무 살 대학생 같은 손님이요. 손님이 칼하트 재킷의 질감을 만지작거리면, 상인은 스툴에 앉은 채 말합니다. “그거, 구하기 힘든 거예요.”

    그 말은 반쯤은 사실이고, 반쯤은 언어예요. 진짜로 희귀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재킷이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도박과 먼지와 복원이 전부 가격표 안에 접혀 들어가 있으니까요.

  4. 마장동에서 새벽을 갈라 배달되는 육회의 온도

    육회 골목의 뜨거운 인기 뒤에는,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신선한 고기를 차갑게 유지하며 오토바이로 날라오는 치열하고 정교한 온도 통제 시스템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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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시장에 가면 여름엔 특히 숨이 막혀요. 중앙 통로의 뜨거운 철판들 때문에 시장 안이 거의 사우나처럼 달아오르죠. 그런데 그 찜통 같은 메인 통로에서 골목 하나만 꺾어 들어가면, 전혀 다른 온도의 세계—육회 골목이 나옵니다.

    비밀은 여기서 동쪽으로 3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마장동 축산물시장과 연결된 보이지 않는 탯줄에 있어요. 광장시장이 무대라면 마장동은 엔진룸이죠. 위층 구제 상가가 ‘짝’이라는 블라인드 위험을 돈으로 바꾸는 곳이라면, 여기 육회 골목은 위험을 ‘시간’으로 눌러버리는 곳입니다.

    육회의 시간은 해가 뜨기 한참 전부터 시작됩니다. 지방 도축장에서 나온 한우가 자정 무렵 마장동으로 넘어오고, 새벽 2시쯤이면 차가운 형광등 아래에서 발골 작업이 한창이에요. 육회용으로는 대개 마블링이 많은 부위보다, 기름기 없는 우둔살이나 홍두깨살 같은 살코기를 많이 씁니다. 지방이 적은 만큼 신선도가 생명이죠. 미세한 산화나 오염이 생기면 그대로 버려야 해요.

    마장동에서 광장시장으로 넘어갈 고기들은 핏물 관리가 특히 깐깐합니다. 상인들은 피가 고여 있는 걸 싫어해요. 핏물은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통로니까요. 새벽 4시 반쯤 덩어리로 나뉘면, 가장 아슬아슬한 수송이 시작됩니다.

    광장시장 골목은 좁고, 출근길 변수도 많아서 큰 냉장 트럭이 들어오기 어렵습니다. 대신 개조한 오토바이나 작은 트럭들이 나서요. 고기는 두꺼운 스티로폼 상자에 담기는데, 물얼음은 대개 피하고 젤 아이스팩을 더 선호합니다. 물이 흘러 고기에 닿으면 식감이 무너지고, 관리도 어려워지거든요. 새벽 5시, 청계천 쪽 도로가 막히거나 오토바이가 말썽을 부리면 그날 장사는 바로 손해로 이어집니다. 오차 범위가 거의 없어요.

    아침 6시쯤 육회 골목에 상자들이 도착하면 전달은 빠르고 거칩니다. 오래 자리 잡은 식당들의 이모님들이 상자를 뜯자마자 고기 덩어리들을 전용 냉장고로 밀어 넣어요. 앞쪽의 분홍빛 조명도 보이는데, 그건 보기 좋으라고만 있는 게 아니라 정육점 문화의 흔적처럼 남아 있는 장치이기도 하죠. 하지만 지금 광장시장에서는 고기가 색이 변할 틈도 없이 무서운 속도로 팔려나갑니다.

    주방의 준비는 온도 통제의 연속이에요. 고기는 살짝 얼 듯 말 듯 차갑게 잡아둡니다. 그래야 일정한 속도로 채 썰 수 있고, 작업하는 동안 온도를 지킬 수 있거든요. 여기에 간장, 설탕, 마늘, 그리고 짙게 볶은 참기름을 버무립니다. 이 참기름은 맛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기 표면에 얇은 막을 만들어 시장의 공기와 닿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춰주는 역할을 해요.

    접시에 올라갈 때도 온도가 계산됩니다. 육회 밑에 까는 배는 아삭함만 담당하는 게 아니에요. 물기를 머금고 차가운 배가 고기 아래에서 열을 잡아주는, 먹을 수 있는 냉각판처럼 작동하죠. 위에 노른자를 터뜨려 섞으면 배즙과 참기름과 고기가 엉겨 붙으면서, 우리가 먹는 동안 딱 알맞은 차가움을 버텨줍니다.

    결국 이 골목의 시스템은 ‘빨리 먹히는 속도’를 전제로 돌아가요. 시장의 열기 속에서 오래 머무르면 식감도 무너지고, 보이지 않는 위험도 커지죠. 그래서 이곳엔 큰 냉동 창고 같은 게 없습니다. 들어온 만큼 밀어내는 흐름만 있어요. 새벽에 실려 온 고기는 밤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텅 빈 냉장고만 소독약 냄새 속에 남습니다.

  5. 무거운 맷돌과 기름 소용돌이가 쌓아 올린 빈대떡 탑

    오랜 시간 바삭함을 잃지 않는 빈대떡은 차가운 맷돌 반죽과 무쇠 불판의 얕은 기름이 만들어낸 튀김과 굽기의 절묘한 기술이 버티게 해준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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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시장에서 빈대떡은 원래 무너져야 하는 음식이에요. 튀긴 음식은 식는 순간, 안쪽의 김이 빠져나오면서 바삭한 껍질이 눅눅해지기 시작하거든요. 게다가 빈대떡을 그렇게 피라미드처럼 쌓아두면,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수증기 때문에 위에 있는 것부터 금방 물러져야 정상이죠. 그런데도 광장시장에서는 몇 시간씩 탑이 버티고, 우리가 하나를 베어 물면 여전히 경쾌하게 부서집니다. 오늘은 그 의미가 아니라, 그 기술에 대한 이야기예요.

    이 탑은 반죽이 불판에 닿기 전부터 준비됩니다. 가게를 보고 있으면 불려둔 녹두가 화강암 맷돌 사이로 계속 갈려 나와요. 상인들은 “믹서기로 갈면 열이 나서 반죽이 죽는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반죽이 과열되면 질감이 쉽게 무너지고요. 무겁고 느리게 돌아가는 맷돌은 그 열을 덜 만들고, 반죽을 상대적으로 차갑게 유지해 줍니다.

    차가운 반죽이 펄펄 끓는 기름과 만나는 순간, 표면의 수분은 천천히 마르는 게 아니라 확 튀듯이 빠져나가요. 그 과정에서 표면에 아주 미세한 구멍들이 생기고, 껍질은 구멍이 있어도 단단한 구조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장을 먹여 살리는 건 결국 불판이에요. 지금 상인들이 쓰는 무거운 주물 불판을 자세히 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얕은 홈이 나 있고 가장자리가 살짝 기울어져 있습니다. 현장에서 보면 그 홈을 따라 기름이 움직이고, 끓어오르는 기름이 빈대떡 밑으로 계속 들어가는 것처럼 보여요. 상인들은 반죽을 ‘굽는’ 게 아니라, 얕은 기름의 흐름을 통제하면서 ‘반쯤 튀기듯’ 익히는 셈이죠.

    기름의 깊이도 애매하게 정확합니다. 팬에 지지는 것보다는 깊고, 튀김기처럼 완전히 잠기진 않아요. 대략 반죽 두께의 절반쯤. 주물의 열 보존력 때문에 차가운 반죽을 올려도 온도가 크게 꺾이지 않고, 바닥은 닿자마자 단단히 코팅됩니다. 그 뒤 상인들이 뜨거운 기름을 위로 끼얹고 뒤집는 순간, 위아래가 한 번 더 밀봉돼요. 안쪽은 돼지고기와 김치, 숙주가 쪄지듯 익는데, 바깥쪽은 수분이 쉽게 새어 나오지 않는 껍질이 됩니다.

    그래서 탑이 버팁니다. 다 튀겨진 빈대떡을 쌓아 올려도 표면이 완전히 매끈하지 않아, 서로가 딱 달라붙지 않아요. 아주 작은 접촉면들 사이로 공기가 지나가고, 남은 기름은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립니다. 다시 반죽 속으로 스며들기 전에 빠져나갈 길이 생기는 거죠.

    오후에 시장에 도착해 한참 전부터 쌓여 있던 빈대떡을 집어도, 여전히 김이 나고 바삭하게 부서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전쟁 이후 이곳이 ‘칼로리를 팔아야 했던’ 조건에서 살아남은 방식이기도 하고요. 광장시장의 빈대떡은 그냥 맛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이라는 가혹한 환경을 버티게 만든 기술의 결과물입니다.

이곳의 이야기

지글거리는 돼지기름 소리와 맷돌에 간 녹두, 넷플릭스에 등장한 칼국수 노점으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매일 수만 명이 밀려드는 거대한 길거리 음식의 성지처럼 보이지만, 고개를 들어 위를 보거나 좁은 계단을 오르면 100년 넘게 층층이 쌓여온 상업의 지층이 드러납니다. 1층의 번잡한 먹자골목 위로 2층의 구제 상가와 한복집이 얹혀 있는, 시대의 생존 방식이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 안에 공존하는 현장입니다.

1905년, 일본 상인들이 남대문 상권을 장악해 들어오자 위협을 느낀 조선의 상인과 투자자들은 자본을 끌어모아 '한성주식회사'를 세웠습니다. 외국 자본으로부터 조선의 상권을 지켜내겠다는 이 결단이 동대문 인근 최초의 상설 시장, 지금의 광장시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청계천의 광교와 장교 사이에 위치해 이름 붙은 이 공간은, 3일이나 5일마다 봇짐을 싸야 했던 상인들이 매일 문을 열고 장사할 수 있게 된 첫 무대였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시장이 잿더미가 되었을 때, 피난민들은 폐허 위에 판자를 덧대고 다시 장을 열었습니다. 미군 군복과 구호물품을 거둬들여 색을 들여 팔던 그 절박한 매대들이 지금 2층 구제시장의 뿌리입니다.

1960~80년대 경공업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시장은 직물과 혼수의 중심지로 전성기를 맞습니다. 비좁은 다락과 2층 공간마다 재봉틀이 쉼 없이 돌아갔고, 지금 관광객들이 열광하는 먹거리들은 모두 이 시절 고단한 노동자들을 위해 발명되었습니다. 고기가 귀하던 때 맷돌에 간 녹두에 저렴한 돼지기름을 듬뿍 둘러 부쳐낸 빈대떡은 훌륭한 열량원이었고, 마약김밥은 바쁜 상인들이 재봉틀 앞에서 일어설 새도 없이 한입에 털어 넣기 좋게 말아낸 생존의 맛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