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전 마당에서 ‘산을 피해 건물을 비튼’ 창덕궁의 원리를 봤다면, 이번엔 반대로—색 하나 때문에 나라 살림이 비틀린 장면을 보게 됩니다.
창덕궁을 걷다 보면 단정한 잿빛 기와지붕이 이어지죠. 그런데 그 사이에서, 눈이 시릴 만큼 파란 지붕이 하나 불쑥 튀어나옵니다. 선정전입니다. 이 궁궐에서 거의 유일하게 청기와를 이고 있는 전각이죠.
이 파란색이 왜 여기에 남았는지 알게 되면, 그저 아름다운 장식으로 보이진 않을 거예요. 당시엔 ‘보기 좋은 색’이 아니라, 전쟁 뒤의 불안과 체면, 그리고 국고의 압력을 한꺼번에 끌어안은 색이었거든요.
비밀은 회회청이라는 안료에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이슬람권에서 들어온 파란색, 코발트였죠. 조선에는 나지 않았고, 중국에서도 늘 넉넉하진 않았습니다. 명나라를 오가는 사신들이 베이징에서 값비싸게 구해와야 했어요.
도자기 푸른 무늬엔 아주 조금만 들어가도 되지만, 지붕은 다릅니다. 기와는 수천 장이고, 그 넓은 면을 고르게 푸르게 만들려면 회회청이 말 그대로 ‘물량’으로 필요했죠. 게다가 청기와는 한 번 구운 기와에 유약을 발라 다시 굽는 방식이라, 온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색이 탁해지거나 유약이 망가져 버립니다. 완벽한 한 장을 얻기 위해 실패한 기와가 쌓였고, 그 위에는 값비싼 코발트가 그대로 발려 있었어요.
그럼에도 이런 일을 벌인 건 광해군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직후, 궁궐은 불타고 민생은 무너진 때였죠. 광해군은 다시 무너지지 않을 나라의 얼굴을, 눈에 보이는 권위로 세우려 했습니다. 선정전 같은 중심 전각을 ‘특별한 색’으로 덮는 일은 장식이라기보다, 불안한 시대에 권위를 증명하려는 강박에 가까웠어요. 푸른빛은 동쪽과 봄을 뜻하는 상징 체계 위에 올라타, 왕권의 정당성을 더 단단히 보이게 해주길 기대받았고요.
하지만 값이 문제였습니다. 회회청 조달과 청기와 제작을 둘러싸고, 조정 안에서는 비용과 백성의 부담을 우려하는 상소가 이어집니다. 땔감 소모와 공역의 부담, 그리고 먼 길을 거쳐 들어오는 재료값까지. ‘지붕의 색’이 국가 운영의 논쟁거리가 되어버린 거죠.
결국 이 집착은 광해군을 끌어내리는 명분 중 하나가 됩니다. 인조반정 이후 새 권력은 광해군이 추진하던 건축들을 정리하고, 재목을 돌려 민생을 수습하려 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선정전의 아이러니가 시작됩니다.
파란 지붕을 마주한 사람들은, 이념으로만 밀어붙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부수기엔 너무 비쌌거든요. 값비싼 안료로 완성된 청기와 전각을 허물어버리는 대신, 결국 해체해 옮겨와 선정전의 지붕으로 다시 올립니다. ‘없애야 할 사치’였는데도, 계산기를 이기진 못한 거죠.
그 뒤로 조선은 청기와를 다시 널리 굽지 않았고, 이런 사치를 막으려는 금지와 경계가 더 강해집니다.
이제 창덕궁의 잿빛 지붕들 사이에서 선정전의 그 쨍한 파란색을 만나면, 잠시 멈춰 보세요. 지금 보고 있는 건 고요한 미학의 상징만이 아닙니다. 전쟁 뒤의 공포가 만든 체면, 나라 살림의 압박, 그리고 없애지 못하고 남겨버린 선택이—푸른빛으로 굳어, 여기까지 온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