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다이브

올레길이 바꾼 해녀들의 내밀한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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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를 걷는 외지인들의 시선이 해녀들의 내밀한 공간이었던 불턱을 침범하면서, 생존과 휴식의 거점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살펴봅니다.

스크립트

올레길을 걷다 보면 바다를 보며 마음이 편안해진다고들 하죠. 그런데 그 바다 곁에는, 오래도록 ‘문턱’처럼 닫혀 있던 공간이 있습니다. 해녀들의 불턱이에요.

바닷가에 까만 현무암을 어깨높이쯤 둥글게 쌓아 올린 돌담을 본 적 있을 거예요. 불턱은 단순히 불을 피우는 자리가 아니라, 물질을 앞두고 몸을 추스르고 장비를 챙기던 곳이었습니다. 어떤 불턱에서는 옷을 갈아입기도 했고, 바람을 피하며 숨을 고르기도 했죠. 대체로 입구 쪽과 안쪽 자리의 온기에는 눈치와 질서가 있었고요. 바깥사람이 쉽게 넘겨볼 수 없는, 바다 쪽의 사적인 문턱이었습니다.

그런데 올레길이 생기면서, 그 문턱을 공공의 발걸음이 가로지르게 된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예고도 없이 돌담 너머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젖은 옷을 벗어 갈아입는 중이거나, 몸이 떨릴 만큼 추운 날 물질을 마치고 돌아온 때도 있었을 텐데요. 그 순간을 “제주의 진짜 풍경”이라며 카메라 셔터로 담아버리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해녀들은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알아듣기 힘든 제주어로 소리를 지르고, 손에 쥔 성게 껍질을 던지거나 바닷물을 확 뿌리기도 했죠. 반면 걷는 사람들은 억울했습니다. 길은 공공의 길인데, 왜 내가 혼나는지 이해하지 못한 거예요. 서로가 서로의 경계를 읽지 못한 채로, 같은 해안을 공유하게 된 겁니다.

갈등은 돌담 밖에서도 이어집니다. 봄이 되면 해녀들은 바닷가 콘크리트 위에 미역이나 톳을 넓게 널어 말려요. 집안 살림과 손주들 등록금을 버티게 하는, 말 그대로 생계입니다. 그런데 바다를 보며 걷느라 바쁜 등산화에는 그게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피해야 할 지저분한 장애물처럼 보이기도 했겠죠. 그래서 제주올레 같은 길 안내 곳곳에는 “미역을 밟지 말아 주세요. 누군가의 생계입니다” 같은 문구가 붙기도 했습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바다 쪽에서 ‘호오이’ 하는 묘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옵니다. 숨비소리예요. 안내서에서는 종종 바다의 노래처럼 말하지만, 해녀들에게 그 소리는 낭만이 아닙니다. 깊은 물에서 올라와 폐에 남은 공기를 뱉어내고, 다음 숨을 겨우 들이마시는 소리. 하루하루를 건져 올리는, 거친 생존의 호흡이죠. 누군가는 힐링을 하러 와서 그 숨을 배경음처럼 듣고 걷는다는 게, 이 해안의 이상한 겹침입니다.

결국 이 낯선 동거는 풍경을 바꿔놓았습니다. 쏟아지는 시선으로부터 해녀들을 보호하고, 고령의 몸을 덜 혹사시키기 위해 지자체는 현대식 탈의장을 지었습니다. 난방이 되고, 사물함이 있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튼튼한 건물요. 분명 필요한 변화였죠.

그런데 그 ‘보호’는 동시에 ‘분리’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올레길을 걷다 보면 텅 빈 옛 불턱의 흔적을 자주 마주칩니다. 옆에는 매끈한 동판 설명문이 서 있는데, 돌담 안은 조용합니다. 한때는 그 안에서 오늘 바다 이야기를 하고, 생계를 계산하고, 몸을 녹이며 서로를 살피던 시간이 있었겠죠. 길은 더 많은 사람을 바다로 데려왔지만, 그 바다의 가장 내밀한 문턱은 오히려 더 굳게 닫혀버린 곳도 생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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