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다이브

정글도와 막걸리로 뚫어낸 타협의 지도

길의탄생주민설득올레리본숨은노력

남의 밭담을 지나야 하는 길을 내기 위해 주민들을 설득하고, 언제든 길을 바꿀 수 있도록 끈으로 묶은 리본의 숨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스크립트

제주올레 길은 포크레인으로 시원하게 밀어서 만든 길이 아니었습니다. 정글도와 막걸리, 그리고 끝없는 설득으로 한 뼘 한 뼘 뚫어낸, 타협의 지도였어요.

처음 길을 내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은 서명숙 씨의 동생 서동철 씨였습니다. 그는 두꺼운 장갑을 끼고 날이 선 정글도를 든 채, 해안가 덤불 속으로 들어갔죠.

제주 해안에는 억센 가시덩굴과 잡목이 화산송이와 현무암을 칭칭 휘감으며 자랍니다. 사람들이 옛길 대신 널찍한 포장도로를 쓰기 시작한 뒤로, 한때 마을 사이를 잇던 길들은 금세 식생에 잠겼어요. 동철 씨와 자원봉사자들은 마을 어르신들의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덤불을 베어냈습니다. 팔과 얼굴은 가시에 긁혀 성할 날이 없고, 신발 밑창은 날카로운 바위에 뜯겨 나갔죠. 반나절을 뚫었는데 끝이 바다로 뚝 떨어지는 절벽이라, 방금 만든 가시터널을 되돌아 나와야 했던 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덤불보다 더 단단한 장벽은 사람들의 마음이었어요.

제주는 검은 밭담으로 경계를 촘촘히 만들고, ‘괸당’이라는 혈연과 지연으로 단단히 이어진 섬입니다. 거기에 4.3의 기억까지 겹치면서, 낯선 발소리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 남아 있기도 하죠. 그런 곳에서 “육지 사람들이 내 집 뒤로 지나가게 해달라”는 부탁은, 낭만이 아니라 불안으로 들릴 수 있었습니다.

반대는 특히 생계가 걸린 자리에서 거셌습니다. 귤밭은 집안의 ‘대학 등록금’이었고, 가축은 하루의 리듬이었으니까요. 누군가는 “돌담 옆으로 지나가면 개가 짖어 흑돼지가 놀란다”고 했고, 누군가는 “사람 손이 닿는 데로 길을 내면 귤이 사라질까 겁난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그냥 “우리 집 앞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길은 똑바로 갈 수 없었습니다. 동철 씨는 정글도를 들고 사흘을 돌아, 돌담에서 조금 더 멀어진 자리로 새 길을 다시 냈습니다. 걷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을 만큼 귤나무와 거리를 두기도 하고,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변상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죠. 막걸리를 들고 평상에 앉아 몇 시간씩 불평을 듣고, 그 자리에서 길의 선을 다시 그렸습니다.

이런 협상은 길의 모양으로 남았습니다. 지금도 올레를 걷다 보면 길이 유독 구불구불하고, 갑자기 오름으로 올라갔다가 마른하천으로 떨어지고, 집과 집 사이로 휙 꺾이는 구간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 휘어짐은 바람이나 믿음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활을 피하려고 에둘러간 흔적이기도 합니다.

인트로에서 봤던 파란색과 주황색 리본도, 예쁜 장식이 아니라 협상의 기술이었습니다. 남의 돌담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땅에 말뚝을 박을 수 없었으니, 표식은 가볍게 묶어두는 방식이어야 했어요. 그리고 가벼워야, 마음이 바뀌는 순간 길도 함께 옮길 수 있었습니다. 리본을 풀고, 옆 골목에 다시 묶는 것만으로요.

길이 열리던 초반에는 걷는 사람들에게도 규칙이 필요했습니다. 마을에서 물을 사고, 밭의 것을 건드리지 않고, 말 한마디라도 먼저 건네는 것. 귤 농가들은 못난이 귤을 무인 판매대에 올려두었고, 걷는 사람들은 천 원짜리 지폐를 올려두고 조용히 가져갔죠. 큰 환대라기보다, 서로의 경계를 조금씩 덜 날카롭게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주올레는 이상한 모양을 갖게 됐습니다. 길은 비틀리고, 표식은 가볍고, 사람은 천천히 걷게 됩니다. 그건 풍경이 낸 형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겨우 합의된 형태예요.

다음 스토리

장소 둘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