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다이브

돌담이 밭의 역사를 말한다

토착기술풍경읽기
5

돌담의 높이, 틈의 크기, 방풍림의 유무는 그 밭이 얼마나 거센 바람을 맞았고 무엇을 키웠는지를 알려주며, 자연과 타협한 기록을 담고 있다.

스크립트

제주 올레길 걷다 보면 돌담이 계속 나오잖아요. 처음엔 그냥 다 똑같은 현무암 담인 줄 알았는데요. 자세히 보면 담마다 생김새가 달라요.

어떤 담은 키가 허리까지 오는데 돌 사이 틈이 보여요. 어떤 담은 어깨 높이까지 쌓았고 빈틈이 거의 없어요. 또 어떤 담은 뒤에 나무가 한 줄로 심어져 있고요.

이거 다 이유가 있어요. 제주 돌담은 바람 관리 시스템이거든요.

제주 현무암은 모양이 불규칙해요. 그래서 시멘트 없이 그냥 얹어서 쌓는데요. 이게 핵심이에요. 돌을 겹쳐서 올리되, 일부러 작은 틈을 남겨요. 바람이 불면 이 틈으로 바람이 새어나가요. 돌담을 넘어가는 게 아니라 통과하는 거예요.

만약 시멘트로 막아서 빈틈 없이 쌓으면요. 강한 바람이 불 때 담 전체를 넘어가려고 해요. 그럼 담이 통째로 무너져요. 근데 틈이 있으면 바람 압력이 분산돼요. 담은 그대로 서 있고요.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돌담을 쌓을 때 바람을 생각했어요. 얼마나 센 바람이 부는지, 뭘 심을 건지에 따라서 담 높이랑 빈틈 정도를 조절한 거예요.

예를 들어볼게요. 올레 7코스 외돌개 쪽 가면요. 바다 바로 옆 밭에 있는 담은 키가 높고 돌을 빽빽하게 쌓았어요. 바닷바람이 세니까요. 근데 완전히 막은 건 아니에요. 자세히 보면 작은 틈이 군데군데 있어요. 바람이 세게 불 때 압력을 빼는 구멍인 거죠.

근처 오름 쪽 밭 담은 좀 달라요. 키가 낮고 돌 사이 틈이 더 보여요. 바닷가보다 바람이 약하니까 굳이 높게 쌓을 필요가 없었던 거예요. 농작물 경계만 표시하면 됐으니까요.

감귤밭 담은 또 다른 패턴이에요. 담이 높고 빈틈이 적은데요. 뒤에 보면 방풍림이 심어져 있어요. 삼나무나 편백나무 한 줄로요. 감귤은 바람에 약하거든요. 그래서 2중으로 막은 거예요. 돌담이 1차로 바람을 분산시키고, 나무가 2차로 막아줘요.

이 패턴을 알면요. 지금은 빈 땅이어도 담만 보고 뭘 키웠는지 알 수 있어요.

담이 높고 뒤에 나무가 줄지어 있으면요. 여긴 과수원이었어요. 감귤이나 유자 같은 거요. 바람 차단이 중요했던 거죠.

담이 낮고 틈이 많으면요. 밭작물 키운 땅이에요. 보리나 조 같은 거요. 바람을 완전히 막을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담이 높은데 틈은 규칙적으로 있고 나무가 없으면요. 바람은 세지만 완전히 막으면 안 되는 곳이에요. 목초지였거나 통풍이 필요한 작물 키운 자리예요.

해안가 담은 무조건 높고 빽빽해요. 근데 완전히 막지는 않아요. 태풍 때 담이 버텨야 하니까 압력을 분산시키는 작은 구멍들이 꼭 있어요.

제주 아니어도 이 원리는 똑같이 적용돼요.

강화도 가면 돌담이 많은데요. 제주처럼 바람이 세진 않지만 담 쌓는 방식이 비슷해요. 몰타르 없이 돌 겹쳐서 쌓고 틈을 남겨요. 세월 지나도 안 무너지게요.

시골 가면 흙담이나 토석담도 있잖아요. 여기도 하단부에 돌 깔고 흙 쌓을 때 배수 구멍 남겨요. 물이나 바람 압력 빼려고요. 원리는 똑같아요.

요즘 지어진 담장도 보면요. 벽돌이나 블록 사이사이에 환기구 넣잖아요. 통풍 안 되면 습기 차고 담이 망가지니까요. 현대 시공이지만 같은 논리예요.

다음에 올레길 걸을 때요. 돌담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번 자세히 보세요. 높이가 어떤지, 틈이 얼마나 있는지, 뒤에 나무가 있는지요.

그럼 그 땅이 바람을 얼마나 맞았는지, 뭘 키웠는지 보여요. 담이 그냥 경계가 아니에요. 몇백 년 전 사람들이 바람이랑 타협한 기록이에요. 돌로 쓴 환경 적응 매뉴얼인 거죠.

다음 스토리

장소 둘러보기

Locked
제주의 걷기 길
Locked
제주

제주의 걷기 길

Upgrade to unlock this place

제주 해안과 마을을 천천히 걷는 도보길로, 풍경과 주민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느끼며 섬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코스.

🌳자연Upgrade
전체 가이드 보기

No story sel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