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길에서 한 걸음만 비껴나면, 갑자기 아주 좁은 길이 나타납니다. 돌담이 시야를 막고, 바람이 한 번 꺾이고, 발소리도 조금 낮아지는 길. 제주에서는 그런 집 앞 골목을 ‘올레’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제주 밖에서 ‘올레’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수십 킬로미터의 해안 트레일을 떠올리죠. 한때는 도시 한복판 통신사 간판에서도 흔히 보이던 단어였고요. 이제는 다른 지역에서도 걷기 좋은 길을 만들면 이름 뒤에 ‘올레’를 붙이곤 합니다.
하지만 제주 방언의 뜻을 알고 나면, 그게 묘하게 뒤집혀 들립니다. 원래 올레는 탁 트인 여행길이 아니라, 아주 좁고 사적인 통로거든요. 예전 제주 집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큰길에서 집 마당으로 들어가는 짧은 골목이 있고, 구멍 난 검은 현무암을 시멘트 없이 쌓아 올린 돌담이 양옆을 감쌉니다. 길어야 몇 미터 남짓한, 누군가의 집으로 스며드는 길이죠.
재미있는 건 이 길이 거의 직선으로 나 있지 않다는 겁니다. 바닷바람을 마당에 닿기 전에 한 번 꺾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직선으로 드나드는 어떤 기운을 경계하던 믿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리고 이런 ‘휘어짐’은, 나중에 전혀 다른 이유로도 반복됩니다. 길을 만든 사람들이 사람의 삶을 피해서, 또 한 번 길을 휘게 하거든요.
그 굽은 길 끝에는 웅장한 대문 대신 정낭이 걸려 있기도 했습니다. 돌기둥 사이에 나무 막대기를 걸어 두고, 그걸로 집에 사람이 있는지, 멀리 나가 있는지 서로 가늠하던 표시예요. 마을마다 방식은 조금씩 달라도, 바깥과 안쪽을 조용히 구분하는 문턱이라는 점은 비슷했죠. 그러니까 원래의 올레는 집 밖과 집 안을 연결하는, 바람도 시선도 잠깐 쉬어가는 내밀한 경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몇 미터짜리 사적인 골목이, 섬을 한 바퀴 도는 거대한 공공의 길이 되었을까요.
서울에서 치열하게 살던 서명숙 씨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보통 산 정상을 향해 수직으로 오르는 데 익숙한데, 제주에는 수평으로 걸으며 위로받는 길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게 섬의 해안을 잇는 길을 구상하고, 이름을 ‘제주올레’라고 붙입니다. 아주 기막힌 역설이죠. 제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집으로 보고, 낯선 사람들에게도 그 집으로 들어오는 문턱을 내어준 셈이니까요.
물론 이 길은 지도 위에서 저절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울타리, 누군가의 생계, 누군가의 일상 곁을 지나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표식도 거창한 구조물이 아니라, 나무와 담장에 가볍게 걸어 두는 리본으로 시작했습니다. 파란색과 주황색, 바다와 귤을 닮은 색깔이요. 가벼워야 했던 이유는, 결국 이 길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그 리본을 따라 걷다 보면, 넓게 열려 있던 해안이 어느 순간 살짝 접힙니다. 파란 리본이 내륙으로 꺾이는 순간, 사람은 좁고 구불구불한 돌담길로 빨려 들어가요. 절벽과 수평선을 보며 걷다가, 갑자기 집과 집 사이의 바람막이 속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제주올레가 가진 공간의 힘은, 단지 길이를 늘린 데 있지 않습니다. ‘올레’라는 단어가 원래 품고 있던 감각—사적인 문턱의 속도와 거리감—을 커다란 공공의 길 안에서도 자꾸 되살려낸다는 데 있죠. 열려 있던 풍경 속에서, 문득 스스로 발걸음을 낮추게 되는 순간처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