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의 붉은 벽돌은, 그냥 오래 남아서 남은 풍경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 동네에선 ‘어떤 재료를 남길지’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규칙과 인센티브의 문제가 됐거든요.
처음부터 붉은 벽돌이 멋있어서 선택된 건 아니었어요. 70~80년대 공장과 다세대 주택이 빠르게 올라가던 시절, 붉은 벽돌은 흔하고 싸고 손에 잡히는 자재였습니다. 성수동의 산업화는 그 실용적인 선택 위에 쌓였죠.
그런데 공장들이 빠져나가고, 빈 공간이 ‘분위기 좋은 장소’로 소비되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집니다. 성수동의 시각적인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이름으로, 붉은 벽돌 외관을 보전하거나 그 느낌을 유지하는 건축 지침과 지원 사업들이 등장했어요. 특정 구역을 묶고, 건물 목록을 만들고, 외관을 유지하거나 새로 지을 때 벽돌을 쓰면 보수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방식이죠. 금액은 ‘몇 천만 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액수보다 신호예요. 붉은 벽돌이 ‘남겨도 되는 것’이 아니라, ‘남기면 보상이 붙는 것’으로 바뀌는 순간이니까요.
그래도 몇 천만 원 지원만으로는 게임이 잘 안 움직입니다. 진짜 큰 레버는 건축 규제 쪽에서 나오죠. 외관을 특정한 방식으로 맞추면, 더 넓게, 더 높게 지을 수 있게 해주는 식의 인센티브가 붙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붉은 벽돌은 더 이상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추가 면적을 얻기 위한 조건이 됩니다. 미학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게 아니라, 숫자로 계산되는 거예요.
이때부터 이상한 장면이 생깁니다. 성수동스러운 벽돌이 필요해졌는데, 새 벽돌은 너무 새 티가 나잖아요. 그래서 ‘낡아 보이는 벽돌’ 시장이 따로 커집니다. 진짜로 오래된 벽돌을 떼어오기도 하고, 낡은 질감을 내는 자재가 돌아다니기도 하죠. 결국 겉면의 표정은 비슷해지는데, 그 표정이 원래 품고 있던 생활은 점점 사라집니다.
1편에서 말하는 건 그 지점이에요. 규칙이 한 동네의 사진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사진 속에서 실제로 돌아가던 일까지 지켜주진 못합니다. 그리고 그 ‘사라짐’이 단순한 분위기 문제가 아니라, 골목 단위로 이어지던 구두 공정이 끊어진 결과라는 건 2편에서 더 적나라하게 보이게 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