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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마을이라는 어색한 관공서 표지판 아래 굳어버린 1930년대의 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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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청이 관광을 위해 '세종마을'이라는 간판을 세웠지만, 이 골목의 진짜 골격은 일본 자본을 막기 위해 1930년대 개발업자가 쪼개 지은 개량 한옥과 이상, 윤동주가 버티던 가난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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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골목에서 전봇대마다 펄럭이는 알록달록한 깃발을 보게 될 때가 있어요. ‘세종마을’이라고 적힌 선명한 표지판들도요. 그런데 그 번듯한 이름표가, 우리가 딛고 있는 거칠고 복잡한 동네의 감촉이랑 어딘가 어긋나 보인다면—그 직감이 맞습니다.

2010년쯤, 종로구청은 경복궁 반대편 북촌이 관광 명소가 되는 걸 보면서 서쪽 동네에도 그럴듯한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그냥 ‘서촌’이라고 불렀지만, 행정은 그 이름이 덜 품격 있어 보였던 거죠. 그러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한 줄을 발견합니다. 1397년, 세종이 이 일대인 장동에서 태어났다는 기록. 2011년, 구청은 이곳을 ‘세종마을’로 공식 선포합니다. 깃발을 달고, 표지판을 세우고, 동네에 새 이름을 입혔죠.

하지만 막상 이곳에서 세종의 흔적은 손에 잡히지 않아요. 기껏해야 길가 보도블록 위에 어색하게 놓인 표지석 하나 정도가 전부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걷고 있는 서촌의 형태는, 왕실의 시간보다 훨씬 나중의 시간이 만들어낸 뼈대예요. 골목 사이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1920~30년대에 대량으로 지어진 개량 한옥들이고, 그 뒤엔 정세권 같은 개발업자가 몰락한 양반들의 땅을 사들여 잘게 나눠 공급했던 흐름이 있습니다. 유리와 벽돌 같은 재료를 섞어, 도시에 들어온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감당하게 만든 집들이었죠. 그 과정에는 사업의 계산도 있었고, 일본인 자본이 서울 중심부로 파고들던 상황에 대한 여러 층의 대응도 섞여 있었습니다.

이 골목들이 싸고, 촘촘하고, 잘 숨는 구조였다는 사실은 1930년대의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도 중요했어요. 시인 이상은 이 동네에서 오래 살며, 답답하게 꺾이는 길들을 오가며 근대의 불안을 글로 밀어 넣었습니다. 우리가 붙잡고 싶은 서촌의 기억이 15세기의 왕이 아니라, 20세기의 이런 사람들인 이유가 거기 있어요. 이름 없는 방과 좁은 마당, 얇은 벽과 낮은 지붕 아래에서 버티던 시간들.

윤동주가 하숙하던 집도 이 근처였고, 그는 인왕산 자락을 오가며 시를 썼습니다. 그가 걸어 올라갔던 수성동 계곡은 지금 우리가 ‘복원된 자연’로 마주하는 바로 그 자리죠. 이 동네는 이렇게, 다른 시대의 레이어들이 서로를 밀어내며 동시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관공서 표지판이 아무리 ‘세종마을’을 밀어붙여도, 사람들은 결국 ‘서촌’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이 지금 스쳐 지나가는 좁은 담의 폭, 비스듬한 기와의 각도, 벽돌과 나무가 섞인 표면은 행정이 만든 이름이 아니라, 그 시대들이 남기고 간 실제의 질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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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규제와 철거의 굴삭기가 비껴간 덕분에, 1930년대 개량 한옥의 목조 처마와 1980년대 세탁소의 붉은 벽돌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생생하게 어깨를 맞댄 지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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