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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가이드

가기 전에 알아두세요

추천 시간
해 질 무렵과 저녁
마지막 검토 · 2026년 7월 10일
요금
공원 입장 무료, 주차와 일부 시설은 유료
공식 출처로 확인 · 2026년 7월 9일 출처 ↗
소요 시간
1~3시간
마지막 검토 · 2026년 7월 10일
휴무
여의도한강공원은 연중 24시간 개방
공식 출처로 확인 · 2026년 7월 9일 출처 ↗
혼잡
따뜻한 주말 저녁이 가장 붐벼요
마지막 검토 · 2026년 7월 10일

운영 시간, 요금, 휴무는 바뀔 수 있어요. 출발 전에 해당 출처에서 다시 확인해 주세요.

장소 이야기 · 챕터 4개 · 공개 오디오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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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기서 시작

    돗자리 하나로 배달 음식을 누리는 거대한 뒷마당

    서울 시민들에게 한강공원은 피크닉 매트를 빌려 잔디에 눕고, 앱으로 치킨을 배달시켜 강바람과 야경을 즐기는 가장 편안하고 일상적인 안식처입니다.

    오디오 준비 중 · 대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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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사람들에게 한강 공원은 그저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에요. 언제든 찾아가 쉴 수 있는, 도시 한가운데 놓인 열한 개의 거대한 뒷마당에 가깝죠.

    이곳에 올 땐 거창한 준비물이 필요 없어요.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면 돗자리와 폭신한 담요, 작은 탁자까지 피크닉 세트를 통째로 빌릴 수 있거든요.

    잔디밭에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면 스마트폰으로 배달 앱을 열면 돼요. 내가 앉은 공원 구역을 입력하면 갓 튀긴 치킨이든 시원한 맥주든, 자리로 직접 배달이 오죠. 편의점에서 라면 하나 챙겨와 뜨끈하게 끓여 먹는 것도 좋고요.

    해 질 무렵이면 강을 가로지르는 대교들에 하나둘 조명이 켜집니다. 선선한 강바람, 뜨거운 국물 한 모금, 강변을 따라 자전거가 지나가는 소리. 늘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이 잠깐 느슨해지는 표정이 여기 있어요. 그리고 그 편안한 풍경이 무엇 위에 놓였는지, 조금만 고개를 낮추면 보이기 시작합니다.

  2.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된 후 흙을 모아 부활한 밤섬

    여의도 개발을 위해 폭파되어 사라졌던 밤섬은, 흐르는 강물이 퇴적물을 다시 쌓고 새들이 씨앗을 물어오며 기적처럼 거대한 초록빛 숲으로 되살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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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교 위를 걷다 보면, 강 한가운데 떠 있는 거대한 초록색 섬이 보입니다. 버드나무와 억새가 뒤엉켜 있고, 가마우지와 원앙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 밤섬이죠.

    그런데 이 섬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보는 저 모습이 태고의 자연이 아니라는 거예요. 저건 20세기에 벌어진 가장 폭력적인 도시 개발에 맞서, 자연이 스스로를 복원해 낸 흔적입니다.

    시간을 1960년대 중반으로 되돌려 볼게요. 밤섬은 원래 철새들의 은신처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던 모래섬이었습니다. 조선 시대부터 수백 년 동안 대를 이어 살아온 주민들이 있었고, 모래밭에서 작물을 기르고 한강을 오가는 목선을 만들며 살았어요. 강물이 잔잔해서 호수 안의 마을 같다고 불릴 만큼 평화로운 곳이었죠.

    그런데 당시 ‘불도저’라 불리던 김현옥 서울시장의 눈에 이 섬은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의 목표는 밤섬 바로 옆 여의도를 서울의 맨해튼으로 만드는 거였어요. 홍수를 막기 위한 거대한 둑이 필요했고, 그 둑을 쌓을 돌이 바로 옆 밤섬의 단단한 바위층에 있었던 겁니다.

    결정은 가차 없이 내려졌습니다. 주민들은 마포구 와우산 비탈로 쫓겨났어요. 그리고 1968년 2월 10일 오후 3시, 서울시는 섬 곳곳에 다이너마이트를 심고 섬 전체를 폭파시켰습니다. 산산조각 난 바위는 여의도의 방수벽을 세우는 데 쓰였고, 밤섬은 지도에서 지워졌죠. 강물 아래 날카롭게 깎인 암초로만 남게 됐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봤던 그 ‘정돈된 강’도, 결국은 흙과 모래를 실어 나르는 강이에요. 폭파 이후 물속에 평평하게 드러난 바위 지대는, 퇴적물이 걸려드는 커다란 덫이 됐습니다. 강물이 그 턱에 부딪히며 속도가 느려졌고, 품고 있던 모래와 진흙을 그 자리에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한 거예요.

    처음엔 얇은 모래층이었을 겁니다. 그러다 썰물 땐 수면 위로 갯벌이 드러났고, 바람과 새들이 갈대와 버드나무 씨앗을 물어왔죠. 진흙에 뿌리를 내린 식물들은 떠내려오던 흙을 더 붙잡아 두었습니다.

    1980년대가 되자 섬이 수면 위로 완전히 되살아났습니다. 폭파 때 가운데가 크게 파였던 자리 탓에, 동밤섬과 서밤섬 두 조각으로 나뉜 채 자라났죠. 지금 밤섬의 면적은 조사 시기와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과거보다 훨씬 크게 불어난 것으로 보고됩니다. 한 번 지워졌던 섬이, 강 한가운데서 다시 몸집을 키운 거예요.

    사람의 발길이 끊긴 뒤로 이곳은 새들의 은신처가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 들어갈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해마다 몇 번씩 생태 조사를 하는 연구자들과, 섬의 숨통을 조이는 외래 식물을 걷어내는 작업자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섬을 맴도는 사람들의 기억까지 사라지진 않았어요. 1968년에 섬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은 이제 팔순, 구순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해마다 음력 새해 무렵, 마포구 북쪽 강변에 모여 제사상을 차립니다. 밤섬 부군당제라는 의식을 치르면서, 눈앞에 빤히 보이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향해 절을 올리죠. 빽빽한 초록빛으로 변해버린 옛 집터를 바라보며, 가마우지가 물을 차고 오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요.

  3. 모래사장을 밀어내고 세운 홍수 방어용 콘크리트 둔치

    우리가 앉아 쉬는 한강의 잔디밭과 비스듬한 콘크리트 경사면은, 장마철 불어난 물을 가두고 도시가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거대한 백사장을 파내고 만든 완충 구역입니다.

    오디오 준비 중 · 대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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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공원 물가에 서서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면, 강둑이 흙으로 완만하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금방 알게 됩니다. 물속 깊은 곳까지 비스듬히 뻗어 내려간 콘크리트 경사면. 우리가 ‘공원’이라고 부르는 자리는, 사실 이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얹힌 얇은 층이에요.

    반포나 여의도 잔디밭에 앉아 있다가 등 뒤를 돌아보세요.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가 쌩쌩 달리는, 높고 가파른 둔치가 보일 겁니다. 저 위가 진짜 가장자리예요. 우리가 앉은 잔디밭은 그 아래로 내려가는 첫 번째 계단이고요. 여긴 예쁜 강변을 만들기 전에, 홍수를 받아내는 완충 구역으로 먼저 설계된 공간입니다.

    그런데 한강이 원래부터 이렇게 깊고 단정했던 건 아니었어요. 시간을 1950~60년대로 돌려보면, 지금의 잔디밭 자리에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이 있었습니다. 여의도도, 뚝섬도, 노들섬도 잘 정돈된 공원이 아니라 거대한 모래벌판에 가까웠죠. 물살과 수위가 더 크게 흔들리던 강이었습니다.

    그 백사장은 어디로 갔을까요. 물에 휩쓸려간 게 아니라, 도시가 강바닥을 파내면서 함께 사라졌습니다.

    1970~80년대의 서울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팽창했어요. 인구가 늘고 오염이 쌓였고, 장마철엔 홍수가 반복됐습니다. 큰비가 오면 얕고 모래가 많은 강은 순식간에 불어나 도시를 위협했죠. 그때 시작된 게 한강종합개발사업입니다. 핵심은 간단했어요. 물그릇을 키우기 위해 강바닥을 깊게 파고, 물이 더 빨리 빠지도록 양옆을 매끄럽고 가파르게 만들자.

    준설선들이 들어와 강바닥을 파내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나온 모래와 자갈은 공사 재료로 쓰이거나 건설 골재로 유통되기도 했습니다. 강 주변의 도로와 제방, 그리고 도시의 새 땅을 만드는 데도 들어갔죠. 우리가 지금 걷는 도시의 단단한 바닥 어딘가엔, 강이 내주었던 모래가 섞여 있습니다.

    모래가 빠져나간 자리는 콘크리트로 고정됐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자연스러운 강둑’이 아니라, 홍수와 침식을 견디도록 만든 인공 경사면을 마주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강이 너무 얕아 보이거나 바닥이 드러나는 걸 막고,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기 위해 상류 쪽 잠실과 하류 쪽 신곡에 수중보가 설치됐죠. 다만 이 보들이 강을 ‘완전히’ 멈춰 세운 건 아니에요. 수문을 열고 닫으며 계절과 상황에 따라 수위를 조절합니다. 우리가 보는 한강은 흐르는 강이면서도, 동시에 운영되는 물길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원은 애초에 물에 잠기도록 설계됐습니다. 장마철이면 불어난 흙탕물이 콘크리트 벽을 넘어 잔디밭과 자전거 도로를 집어삼키죠. 한강공원에 덩그러니 서 있는 편의점들을 유심히 보면, 건물들이 전부 철기둥 위에 올라가 있거나 물에 뜰 수 있게 만들어져 있어요. 물이 차오르면 시설은 버티고, 물이 빠지면 사람들은 다시 돌아옵니다. 잠수교가 여름마다 잠기는 풍경도, 이 시스템 안에서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비가 그치고 수위가 낮아지면 흙탕물은 다시 강으로 빠져나갑니다. 편의점은 제자리로 내려오고, 작업자들이 고압 호스로 진흙을 씻어내죠. 불과 며칠만 지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람들이 다시 잔디밭에 돗자리를 깝니다. 깊고 검은 물이 철썩이는 콘크리트 둔치 바로 위에서요.

  4. 전쟁을 대비해 바짝 엎드린 투박하고 튼튼한 잠수교

    반포대교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 납작하게 깔린 잠수교는, 유사시 군사 장비가 빠르게 한강을 건너고 폭격에도 응급 복구가 쉽도록 설계된 냉전 시대의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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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지 않는 날 잠수교를 걸어보면, 이 다리가 왜 이렇게 낮은지부터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다리 한가운데에서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세요. 머리 바로 위로 반포대교의 거대한 콘크리트 밑바닥이 하늘을 가리며 덮고 있을 겁니다. 그늘이 길게 드리워진, 납작하고 단단한 길을 걷는 느낌이죠.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한강의 시설들은 ‘잠기도록’도 설계됩니다. 잠수교도 예외가 아니에요. 지금은 물에 잠기면 뉴스 화면의 단골 장면 정도로 소비되지만, 1970년대에 이 낮은 다리는 단순한 도시 미관이 아니라 다른 논리로 이해됐습니다.

    1976년, 이 다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한국 사회엔 전쟁의 공포가 아주 현실적이었어요. 북한의 국경은 서울에서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고, 당시 서울의 핵심 시설과 인구는 한강 북쪽에 몰려 있었습니다. 만약 탱크가 밀고 내려오면, 한강의 다리들은 피난과 이동의 병목이 될 수밖에 없었죠.

    그 무렵 정부는 도시의 무게 중심을 남쪽으로 옮기는 동시에, 유사시에 무거운 장비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들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잠수교는 그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낮고 평평한 다리입니다.

    이 다리에서 눈에 띄는 ‘투박함’은 기능을 향해 모인 결과처럼 보입니다. 다른 한강 다리들처럼 높이 솟은 케이블이나 아치 구조가 거의 없고, 상판은 두껍고 단단하죠. 그런 형식은 공격을 받았을 때도 전체가 한 번에 무너지는 구조보다, 손상 부위를 응급 복구하며 통행을 유지하기에 유리했을 거예요. 교각이 두껍고 촘촘한 것도, 강 위의 낮은 구조물을 더 단단히 붙잡아 두기 위한 선택으로 읽힙니다. 그리고 낮은 형상 자체가 멀리서 눈에 덜 띄는 데 도움이 된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6년 뒤인 1982년, 서울시는 잠수교 바로 위에 반포대교를 얹습니다. 도시 계획의 언어로는 교통량을 해결하는 복층 교량이었죠. 동시에 위아래로 겹친 이 구조는, 아래의 낮은 길을 어느 정도 가려주는 ‘지붕’처럼 작동합니다. 위쪽이 도로라면, 아래쪽은 그림자 속의 통로가 되는 셈이에요.

    지도에서 보면 더 선명합니다. 잠수교를 따라 북쪽으로 곧장 올라가면 당시 거대한 용산 기지 방향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됩니다. 전쟁이든 재난이든, 큰 이동이 필요한 순간에 이 길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해지죠.

    지금의 잠수교는 그 반대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금요일 밤이면 자전거 바퀴가 젖은 아스팔트 위를 스윽 지나가고, 연석에 걸터앉은 사람들이 캔을 딸깍 열어 올립니다. 머리 위 반포대교에선 분수의 물줄기가 빛을 받아 쏟아지죠. 무거운 것들이 달리기 위해 만들어졌을지 모를 낮고 단단한 길 위로, 가벼운 소리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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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이야기

40km 넘게 이어지는 11개의 한강공원은 서울 시민들이 돗자리를 펴고 자전거를 타는 익숙한 휴식처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맨발로 밟는 둔치와 푸른 잔디밭은 원래부터 있던 자연이 아닙니다. 이 거대한 공원은 홍수를 막기 위해 강 양옆을 콘크리트로 통제하고, 올림픽을 위해 반듯하게 깎아낸 뒤, 수십 년 후 그 위를 다시 흙과 갈대로 덮어낸 끝없는 토목공사의 결과물입니다. 치맥을 즐기는 평화로운 발밑에는 서울의 치열했던 개발사가 묻혀 있습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은 수심이 얕고 하얀 모래밭이 끝없이 펼쳐진 자연 하천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뚝섬 모래사장에서 여름 피서를 즐겼고, 마포 나루터에는 곡물과 소금 배가 드나들었습니다.

이 풍경을 바꾼 건 사람의 결정이었습니다. 1968년 정부는 홍수가 잦은 여의도 땅을 높이기 위해 강 한가운데 있던 밤섬을 폭파했습니다. 부서진 바위와 모래는 지금의 국회의사당과 금융가가 들어선 여의도의 둑이 되었고, 강바닥에서 파낸 모래는 강남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올리는 뼈대로 쓰였습니다.

우리가 달리는 반듯한 '공원'의 형태는 1980년대에 완성됐습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유람선이 뜰 수 있도록 강바닥을 깊게 파내고, 강 양옆을 가파른 콘크리트 제방으로 덮었습니다. 그 제방 위 평평해진 콘크리트 둔치에 잔디를 입힌 것이 지금 한강공원의 시작입니다. 물길은 안전해졌지만, 강 남쪽으로 8차선 올림픽대로가 뚫리면서 시민들은 매연을 뿜는 고속도로에 가로막혀 걸어서 강에 닿기 어려워졌습니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