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유리문을 하나 밀고 들어가는 순간, 바깥의 소음이 뚝 끊겨요. 린시드 오일과 덜 마른 찰흙, 발사 나무, 그리고 스프레이 래커의 매캐한 금속성 냄새가 훅 끼쳐오죠.
호미화방이에요. 노란 선 안에서 음악이 규격으로 관리되는 거리 한복판에서, 여긴 이상하리만큼 ‘물성’으로 버티는 곳입니다.
이 가게는 70년대부터 홍익대 학생들에게 재료를 대주며 버텼다고 해요. 이름도 농기구 호미에서 따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요. 농부가 호미로 밭을 매듯, 예술가도 도구로 일을 한다는 뜻이었다고요. 한때는 화방 게시판이 약속 장소였고, 주변엔 표구사나 석고 가게 같은 곳들이 촘촘히 붙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풍경이 많이 달라졌죠. 임대료가 오르고, 거리의 업종이 빠르게 바뀌면서 주변의 작은 가게들은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호미화방은 남았어요. 그 이유는 감성보다 구조에 가까워요.
첫째, 이곳은 학생들의 응급실입니다. 졸업 전시를 앞둔 밤, 모형을 만들다 2밀리미터짜리 목재가 부러졌다고 상상해 보세요. 내일 도착하는 배송은 도움이 안 돼요. 지금 당장 10분 안에 재료가 필요하니까요. 그 순간 사람들은 결국 이 문을 열게 됩니다.
둘째, 매장 안에는 온라인이 대체하기 어려운 판단의 시간이 있어요. 학생들이 비싼 수채화용 종이를 손끝으로 살살 문질러보며 표면을 고르고, 건축 모형 코너에서 1:100 인물 피규어를 들어 올려 크기를 가늠합니다. 코픽 마커 진열대 앞은 유독 긴장감이 흐르죠. 작고 비싸고, 너무 쉽게 주머니로 사라질 수 있는 물건이니까요.
셋째, 이곳은 학교의 시간표에 붙어 있습니다. 수업과 과제는 매 학기 반복되고, 그 과제는 늘 같은 종류의 재료를 대량으로 필요로 해요. 캔버스, 바인더, 석고, 폼보드 같은 것들요. 호미화방은 ‘홍대 앞 상권’만 바라보는 가게가 아니라, 대학이라는 기관의 리듬에 기대어 함께 움직입니다. 옛 철길이 잘라낸 자투리땅들이 작은 가게들을 낳았듯, 이 가게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학교의 수요를 받아먹으며 생존하는 셈이죠.
그래서 호미화방을 보고 있으면, 홍대의 원형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를 바꿔 남아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가 유리문을 열고 들어와 물감 튜브 하나를 집어드는 순간, 이 동네의 ‘원래 쓰임’이 현재로 다시 공급돼요. 그 냄새가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한, 홍대는 아직 전부 다른 곳이 되진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