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 올라가면요. 거기 봐야 할 게 물만은 아니에요.
호수 가장자리 보세요. 바위가 들쭉날쭉 튀어나와 있어요. 근데 물 표면은 완전 평평하거든요. 이 대비가 중요해요.
백록담은 화산 분화구인데요. 정확하게는 무너진 분화구예요. 원래 한라산 꼭대기에 마그마가 고여 있던 방이 있었어요. 용암이 빠져나가고 나서 천장이 지탱을 못 하니까 무너져 내린 거죠.
그래서 가장자리가 들쭉날쭉한 거예요. 무너질 때 바위가 깨지면서 만들어진 흔적이거든요. 깔끔한 원형이 아니라 톱니처럼 울퉁불퉁해요.
근데 바닥은 달라요. 무너진 바위랑 화산재가 쌓이면서 막혔거든요. 물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요. 그래서 눈 녹은 물이랑 빗물이 그냥 고여요. 봉인된 그릇이랑 똑같아요.
이게 알려주는 게 뭐냐면요. 백록담 같은 화산 호수는 두 가지가 동시에 있어야 만들어져요. 무너진 테두리하고 막힌 바닥.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안 돼요.
테두리만 무너지고 바닥이 안 막히면요? 물이 다 빠져나가요. 제주도 오름 몇 개가 그래요. 분화구는 있는데 물은 없거든요. 바닥에 구멍이 있어서요.
반대로 바닥은 막혔는데 테두리가 안 무너지면요? 물이 못 고여요. 분화구가 너무 깊어서 물이 차기 전에 증발해버려요.
백록담은 둘 다 있어요. 그래서 물이 고이는 거예요.
이 패턴 알면요. 다른 화산 가서도 바로 읽어요. 테두리 봐서 톱니 모양 나오고 중앙이 평평하면 화산 호수예요. 한눈에 알 수 있어요.
일본 큐슈에 아소산 있잖아요. 거기 분화구 가면 백록담이랑 완전 똑같아요. 가장자리 울퉁불퉁하고 물 평평해요. 같은 과정이거든요.
근데 백두산 천지는 좀 달라요. 천지도 화산 호수긴 한데요. 칼데라라고 해서 훨씬 큰 규모로 무너진 거예요. 패턴은 같은데 크기가 다른 거죠.
백록담 물 높이는 계절마다 달라요. 봄에 눈 많이 녹으면 물이 차오르고요. 여름 가뭄 지나면 물이 줄어들어요. 바닥이 막혀 있으니까 들어오는 물하고 증발하는 물의 균형으로만 결정돼요.
그래서 백록담 보러 가면요. 물만 보지 마시고 가장자리 바위 좀 보세요. 들쭉날쭉한 게 무너진 흔적이에요. 그 흔적이 지금 호수를 만들어준 거거든요.
화산 호수는 다 이렇게 만들어져요. 무너진 테두리하고 막힌 바닥. 이 두 가지만 기억하면 어디 가든지 바로 알아볼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