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를 잡고 시작 버튼을 누를 때,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게 하나 있어요. 방금 전까지 이어폰으로 듣던 그 가수의 음원 위에 내 목소리를 얹는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가 부르는 반주는 보통 원래의 음원이 아니에요. 노래방 기계가 연주해 내는, 일종의 전자 악보에 더 가깝습니다.
K팝 신곡은 대개 저녁 시간대에 공개되는 편인데요. 빠르면 다음 날 오후, 교복 입은 학생들이 코인 노래방에 들어갈 즈음이면 그 곡이 검색 목록에 떠 있기도 해요. 그 짧은 시간 동안 TJ미디어나 금영 같은 회사 안에서는 엄청난 속도전이 벌어집니다.
곡이 공개되면 ‘카피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헤드폰을 쓰고 트랙을 붙잡아요. 기획사에서 반주 데이터를 따로 받는 게 아니라, 공개된 음악을 귀로 해체해야 하거든요. 베이스라인, 리듬 기타, 신시사이저, 드럼의 킥과 스네어까지. 듣고, 찾아내고, 작곡 프로그램을 열어 처음부터 끝까지 음표를 하나하나 찍어 넣습니다.
여기서 노래방 특유의 소리가 생겨요. 원곡의 파형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니라, 기계가 다룰 수 있는 가벼운 데이터로 ‘번역’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노래방 기기 안에는 전용 음원칩, 그러니까 정해진 악기 소리 프리셋을 가진 톤 제너레이터가 들어있고, 그 안에서 쓸 수 있는 소리는 한정돼 있어요. 수백, 많게는 수천 가지 프리셋 안에서 가장 비슷한 소리를 골라 겹치고, 모양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최신 아이돌 곡의 복잡한 질감을 그대로 복사하긴 어려워요. 대신 정해진 ‘신스 베이스’와 ‘일렉트릭 기타’ 같은 소리를 조합해 최대한 비슷한 결로 흉내 내죠. 복잡한 소리의 살은 빠지고, 음의 높낮이와 길이 같은 뼈대가 먼저 서고, 그 위에 기계가 낼 수 있는 악기가 입혀집니다. 박자는 사람 손맛 대신 아주 또박또박해지고요.
카피스트들이 밤을 새우는 동안, 다른 방에서는 코러스 팀이 대기합니다. 아이돌 곡의 화음이든 트로트의 간드러진 코러스든, 원곡의 백보컬을 그럴듯하게 따라 불러 녹음해요. 또 다른 쪽에서는 화면에 나오는 가사의 색을 입힙니다. 반주에 맞춰 글자 색이 정확한 순간에 변하도록 맞추는 작업이죠. 랩처럼 리듬이 복잡한 곡은 누군가가 모니터 앞에서 타이밍을 잘게 쪼개며 수동으로 찍고 있습니다.
새벽이 되면 이 모든 수작업이 아주 작은 파일로 묶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잠든 시간, 노래방 기계들은 중앙 서버에 접속해 업데이트를 받아요.
다음 날 오후, 학생들이 리모컨을 들어 신곡 번호를 입력합니다. ‘음정 내림’ 버튼을 꾹꾹 누르기도 하죠. 데이터로 만들어진 반주라서 템포는 그대로 두고, 음정만 깔끔하게 낮출 수 있으니까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건 좋아하는 가수가 스튜디오에서 완성한 그 음원 자체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 밤새 귀로 해체하고, 제한된 악기 소리 안에서 다시 조립해 만든 번역본이에요. 노래방은 그 위에 우리의 목소리가 올라오도록,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을 틀어주는 공간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