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저는 을지로 세운상가 3층 공중 보행교에 서 있어요. 아래를 내려다보면 녹슨 지붕과 복잡한 골목이 한눈에 들어오죠.
제 옆에는 커피를 들고 낡은 콘크리트 기둥을 필름 카메라로 찍는 젊은 사람들이 있어요. 바로 옆 칸에선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70대 장인이 오래된 앰프를 분해하고 있고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인데, 이 보행교가 처음부터 ‘섞이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었다는 걸 알면 더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세운상가는 60년대 말, 도심을 ‘정리’하겠다는 욕망 속에서 태어난 거대한 구조물이었어요. 핵심은 지금 제가 걷는 이 3층 데크였습니다. 단순한 복도가 아니라, 지상의 을지로와는 다른 높이에 ‘또 하나의 땅’을 만들어 올린 거예요.
story1에서 황동 판이 리어카를 타고 골목을 컨베이어처럼 흘러가던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그 생산의 동선이 땅에서 숨 쉬는 동안, 이 데크는 그 위로 시선을 띄워 올립니다. 만드는 사람들의 시간과 냄새, 소음에서 떨어져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죠. 깨끗한 길을 걷는 사람과,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이 서로를 다른 세계처럼 보게 만드는 필터였습니다.
처음에는 그 의도가 비교적 잘 작동했습니다. 위에는 깔끔한 시설과 공간이 들어섰고, 아래의 공업 지대는 콘크리트 밑으로 가려졌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 중심이 이동하고 건물이 낡아가면서, 위쪽의 빈칸들은 다시 아래의 공기에게 점령당합니다. 작은 창고와 작업실이 들어서고, 부품과 사람과 기술이 이 복도 주변에 달라붙어요.
그러면서 이 데크의 또 다른 성격이 드러납니다. 지상과 살짝 끊긴 미로 같은 길은 단속과 충돌을 피해 물건과 정보가 오가기 좋은 구조였어요. 부품이 가게에서 가게로, 손에서 손으로 건너가고, 누군가는 여기서 조립을 하고 누군가는 복제를 했죠. 거대한 공장보다 더 촘촘한, ‘가까움의 네트워크’가 이 건물 안에서도 자랐던 겁니다.
시간이 더 흘러 철거 이야기가 나왔다가, 방향이 재생으로 바뀌면서 보행교는 다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이 풍경이에요. 트렌디한 손님과 오래된 기술자가 같은 높이에서 스쳐 지나가죠.
아이러니는 여기 있습니다. 이 데크는 원래 아래의 혼란을 피하려고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바로 그 혼란을 ‘분위기’로 바라보기 위해 이 위에 올라섭니다. 같은 구조가, 한때는 차단을 했고, 지금은 관람을 가능하게 해요. 공간을 설계하는 건 인간이지만,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시선까지 끝까지 통제하긴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