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동용궁사에 가면 다들 바다만 봐요. 갯바위 위로 부서지는 파도, 그 너머로 탁 트인 수평선. 1장에서 그 바다가 어떻게 사람들의 소원을 끌어당기는지 봤죠. 그런데 그 바다는, 건물에겐 독입니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서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한 대웅전을 자세히 보세요. 고요한 성지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긴 소리 없는 전쟁터예요.
바다는 절을 아주 집요하게 뜯어먹습니다. 내륙의 절들은 비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니 처마가 거대한 우산이 돼요. 하지만 해안에서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며 소금기 섞인 물입자를 안개처럼 뿜어 올립니다. 그 해풍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처마 밑, 복잡한 나무 결구 사이사이로 파고들죠.
소금기는 나무를 안에서부터 상하게 합니다. 나무 표면에 앉은 염분은 습한 날엔 수분을 끌어당기고, 마른 날엔 다시 말라붙어요. 이 ‘젖었다-말랐다’가 반복되면서 섬유질이 약해지고, 결구는 조금씩 헐거워집니다. 그냥 썩는 게 아니라, 바닷바람이 구조를 서서히 흔드는 거예요.
단청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내륙에서는 관리만 잘하면 단청이 수십 년 가는 경우도 많지만, 바다를 정면으로 받는 면은 얘기가 달라요. 전통 단청은 아교 같은 재료로 안료를 붙이는데, 해무가 잦고 습도가 높으면 그 결합이 약해지고 표면이 들뜨기 쉽습니다. 부풀어 오른 색이 갈라지고,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다시 칠하고—이게 반복됩니다.
지붕 위 기와도 예외가 아니에요. 염분은 기와가 마르는 속도를 늦추고, 표면에 결정이 남아 미세한 손상을 키웁니다. 여기에 겨울엔 젖은 기와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틈이 벌어지기 쉬워요. 그 틈으로 비가 스며들면, 기와 아래의 흙과 나무층이 젖고,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부터 약해집니다.
그래서 산속 절에서는 상상도 못 할 관리가 필요하다고 해요. 태풍이 지나간 뒤엔 건물에 남은 염분을 씻어내는 세척을 하기도 하고, 보수할 땐 전통 방식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서 눈에 띄지 않게 스테인리스나 티타늄 보강재를 넣거나, 현대 재료로 결합을 돕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전통을 지키려면, 아이러니하게도 현대가 필요해지는 거죠.
다음에 용궁사에서 대웅전의 쨍한 단청을 보게 된다면, 그건 오래된 자취라기보다 바다와의 전쟁에서 방금 붙인 값비싼 반창고일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