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다리 건너며 본 그 알록달록함 아래에, 사실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깔려 있어요. 자만마을의 진짜 얘기는 벽에 칠해진 페인트가 아니라 우리가 밟고 있는 이 가파른 땅 그 자체에 있거든요.
이 비탈길은 평범한 달동네가 아닙니다. 조선 왕조의 본향 신화가 박힌 능선이에요. 풍수지리를 보던 사람들은 오목대에서 이목대로 이어지는 이 능선을 단순한 언덕이 아니라 전주 이씨가 왕이 될 운명을 품은 맥으로 봤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윗대 조상인 이안사가 태어나고 무리를 이끌던 곳이 바로 이 산자락이죠.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1900년이 됩니다. 무너져가는 왕조를 대한제국으로 포장하며 버티던 고종은 이곳에 거대한 비석을 세웁니다. 자신의 핏줄이 가진 정통성을 돌에 새겨 박아버린 거예요. 화려한 단청을 칠한 기와지붕 아래 신성한 공간을 만들었죠. 지금 자만마을 한가운데 있는 이목대 비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제국은 곧 무너지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이 일대의 능선은 도시 정비와 도로 개설로 적잖이 훼손됩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이 터져요. 피난민들이 전주로 밀려들었지만 평지에는 이미 주인이 있었고, 빈털터리 피난민이 도심 한가운데 천막을 칠 순 없었죠. 그때 사람들 눈에 들어온 게 이 가파른 산자락이었습니다. 왕조는 망했고, 새로 세워진 정부는 전쟁을 치르느라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한 이 왕실의 옛 땅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거든요.
신성했던 자리는 그렇게 피난민들의 도피처가 되었습니다. 밤마다 그 가파른 경사를 기어 올라가면 달이 훤히 보인다고 해서 달동네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때쯤이에요.
초창기 이목대 주변의 풍경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고종이 세운 정교한 황실의 비각이 우뚝 서 있고, 그 옹벽에 기대어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주워 온 종이상자와 드럼통을 펴서 벽을 만들었죠. 경사가 워낙 심해 제대로 된 주춧돌을 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골목은 누가 설계한 게 아니라, 빗물이 흘러내리는 홈통과 판잣집 틈새가 그대로 길이 된 거예요. 한 사람 어깨가 겨우 빠져나갈 만한 모세혈관 같은 골목들이 이목대 비각을 빙 둘러쌌습니다.
여인들과 아이들은 밥 한 솥을 끓이려고 산기슭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 이 가파른 계단을 올랐어요. 하늘의 은혜를 기리는 웅장한 비석 앞을 매일 오르내린 거예요. 훗날 이 비각은 좁은 양철지붕 밑을 빠져나온 동네 노인들이 잠시 바람을 쐬는 쉼터가 되었습니다.
고종은 이곳이 절대적인 숭배의 공간이 되기를 바랐지만, 이 땅은 한국에서 가장 밀도 높은 생존의 현장이 되었어요. 그런데 참 묘한 일입니다. 이 피난민들의 빽빽한 판잣집과 미로 같은 골목길이 결과적으로 이목대를 지켜냈거든요. 1970–80년대 전주 평지에 바둑판처럼 길을 내고 아파트를 올릴 때, 자만마을은 포클레인이 들어가기엔 너무 가파르고 집들이 얽혀 있어서 개발업자들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피난민들이 본의 아니게 조선 왕조의 요람을 지키는 마지막 파수꾼이 된 셈이에요. 멸망한 왕조의 신화적인 기원 위에, 전쟁을 겪은 현대 한국인들의 가혹한 탄생이 뒤엉켜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한옥마을 뷰’라는 말이 이 언덕에서 돈이 되는 방식—그건 2화에서 보게 될 거예요. 그때까지, 지금 이 단단한 시멘트 아래 어떤 흙이 깔려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셔도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