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산공원에서 고개를 들어보면, 새하얀 기둥 위로 부산타워가 서 있어요. 처음 보면 1970년대가 상상하던 우주선 같기도 해요. 위쪽이 팔각형으로 불룩 튀어나와 있거든요.
그런데 그 실루엣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나면, 이 탑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 형태는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거예요. 돌로 된 불교 탑의 지붕 장식을, 콘크리트와 유리로 공중에 크게 다시 만들어 올려놓은 셈이죠.
이게 왜 1973년 부산 한가운데 올라갔을까요. 그때의 부산은 관광 도시라기보다, 항구와 공장이 도시를 밀어 올리던 시절이었어요. 디젤 냄새, 시장 비린내, 공장 매연 같은 것들이 공기 속에 섞여 있었고요. 거칠게 돌아가는 수출의 엔진 같은 도시 한복판에, 매끈한 콘크리트 탑이 솟았습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아주 ‘옛것’의 형태가 앉아 있어요.
이 조합을 이해하려면 당시의 정치와 미학을 같이 봐야 해요. 1972년, 박정희 정권은 유신 체제를 시작합니다. 무력과 규율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죠.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간다”를 설득할 이야기, 거대한 신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선택된 뿌리 중 하나가 통일신라였어요. 국가는 경주를 ‘민족의 원형’처럼 강조했고, 다보탑은 10원짜리 동전에도 새겨졌죠. 말하자면, 누구 주머니 안에서든 매일 손에 잡히는 국가의 로고가 된 겁니다.
그러니 부산이 근대 도시로 도약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탑을 세울 때, 서구식 미래주의만으로 가긴 어려웠을 거예요. 당시 공공 건축에선 현대적 구조 위에 전통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방식이 자주 쓰였거든요. 건축가 나상기는 그 방식을 수직으로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장식 없이 쭉 뻗은 기둥이 올라가다가, 대략 100미터쯤에서 갑자기 형태가 바뀌어요. 그 지점에서 전망대가—다보탑의 실루엣을 크게 부풀린 듯한—낯선 지붕 아래로 펼쳐지죠.
그리고 그 ‘형태가 바뀌는 선’을 가만히 올려다보면, 이상하게 시대의 감정이 만져져요. 차갑게 솟는 콘크리트가, 천 년 넘은 돌의 기억을 빌려 정당성을 붙잡는 순간. 과거의 권위를 움켜쥔 채 미래로 달려가려 했던 1970년대의 긴장감이, 아직도 그 경계에 매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탑이 서 있는 언덕이 왜 그렇게 비어 있었는지, 왜 여기서 이런 상징이 더 날카롭게 들리는지는, 이 다음 이야기에서 땅 자체를 따라가며 다시 보게 될 거예요.
